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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학농민혁명 3. 1만세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명중 천 도교인은 손병희 선생을 비롯해 15명이다. 그리고 기똑교와 불 교 대표들까지 끌어들여 모든 준비를 해 용 세력도 천도교로 알 려졌다. 천도교는 다름아닌 동학 제3세 교주였던 손병희 선생이 1905 년 12월 l일 창립한 동학의 새로운 이름이다. 따라서 동학 농민 혁명이 3.1운동의 배경으로 가장 유력하지 만, 천도교로 개명할 당시 동학지도자였던 이용구가 송병준과 함 께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를 만들어 활동했고, 손병회의 천 도교에 맞서 시천교(待天敎)를 창설하여 매국행위를 했기 때문 에 일부세력은 3.1운동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용구의 일진회 세력을 빼놓고는 민족종교로서 항일 독립운동에 가장 앞장서 활동했다. 동학 농민 혁 영은 18(1Ü년 최제우가 제세구민의 뭇올 가지고 창 시한 동학에 기초를 둔 농민 중심의 민중항쟁이라고 할 수 있다. 1894년 2월 15일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분노한 농민들이 불올 붙였지만, 당시 수취 체제의 문란으로 수탈의 폐해를 혁파 하고 신분 차별올 타파하여 농민과 소상인 즉, 당시 대다수 민중 들의 안정된 삶을 요구하며 일어났기 때문에 그 불길은 전국적으 로 퍼졌다. 다시 말해 19세기 조선이 처한 체제 모순과 외압의 시 저11 1부 총생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