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page

의병전쟁이 장기전으로 돌입하자 한국병합의 큰 장애물인 의 병을 속히 종식시킬 목적으로 1909년 9, 10월에 이른바 ‘남한 대 토벌작전’을 개시하여 호남의병 대학살을 감행하였다. 이로 인해 의병장 심남일올 비롯하여 1천여 명이 전사하는 퉁 대타격을 입 었다. 후기의벙기 일본측 자료로 확인 가능한 희생자만도 2만여 명 에 이른다. 그 가운데 1907년에세 1909년의 2년여 기간에 집중적 으로 희생되었다. 부상자 수는 그 이상이며‘ 포로들의 부당한 처 리에 대하여는 아직 조사도 안 된 상태에 있다. 또한 일제 측의 통계는 누락된 부분들이 보인다. 의병의 활동 은 1915년까지 지속되었으나 ‘조선폭도토별지’의 통제는 ]911 년까지다. 1912년부티 1915년까지의 통계가 누락되었다. 또한 부분적으로 의병 희생자의 숫자가 축소되어 보고되었다. 따라 서 후기의병기에 희생된 의병의 숫자는 일제 측의 롱계에서 2 만 명이 안 되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그보다 3, 4배에 이를 것으 로보인다. 한말 의병은 제국주의 열강의 지원과 비호를 받은 일제침략자 에 대한 최대의 항일민족세력올 형성하였다. 이들 가운데 한 갈 래는 풍기광복단, 대한광복회, 독립의군부 둥으로 이어져 19]0년 대 국내에서의 민족운동을 주도헤 갔으며, 또 다른 갈래는 만주, 연해주로 망명하여 역시 해외에서의 무장독립운동의 기저가 되 었다. 그리고 이들의 반외세 불굴의 투쟁정신은 1910년 이후 한 재l부 총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