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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주력부대를 지방으로 출동시켜 진압을 서둘렀다. 1907년 8월 l일 일제가 조선군대를 강제해산하자 이에 항거 한 군인들과 의병이 서로 연합하여 대대적인 무장항일전을 벌였 다. 이때부터 후71의병이 시작되는데, 해산된 군인의 항전은 서 울의 시위대로부터 시작되어 원주 · 강화 · 홍주 · 진주진위대로 확대되었다. 이들은 각기 의병에 가담하여 의병의 전력을 강화시 켰다. 원주진위대는 특무장교 민긍호의 지휘 아래 병사충올 중심 으로 거의하여 강원도 충북 일대에서 본격적인 의병항쟁올 전개 하며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문경의 이캉년부대, 원주의 이은찬 부대, 영천의 정환직 · 정용기 부자의 산남의진, 영해의 신돌석부 대, 호남의 기삼연 · 심남일 · 이석용 · 전해산 · 안계흉부대, 충 남의 정주윈부대, 함경도의 홍범도 · 최덕준부대 둥은 특히 이름 난의병부대였다. 이에 앞서 최익현은 1906년 2월,자신의 문하생이자이미 독립 하여 전북 태인의 종석산(種U山) 밑에 우거하며 후학을 양성하 던 임병창(林炳함)을 찾아가 구체적인 거사 계획을 수립하여 전 북 정융에서 의병을 일으켰는데 화서 이항로의 문인1로 척사위 정의 대변인격인 면암의 창의는 전국 유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 쳤다. 1907년 11월경에는 전국연합의병의 성격을 갖는 13도창의군 이 결성되었다. 서울 탈환을 목표로 1908년 1월 양주에 집결한 지11부 총실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