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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장수들은 만수암(절)에 모여서 논의 중이었고, 제천에서 안 숭우가오기를 기다렸다. 안숭우 일행이 도착하자 이들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고하 였다. 장수들이 논의를하고드디어 안창역전으로모여 이춘영이 단상에 올라가 창의의 깃발을드니 때는 을미년 ]]월 28일(양력 l월 12일) 을미의병(지평의병)은 전투를 선포하였다. 지평의병 은 원주와 제천관아에 이어 충주성올 점령하는 퉁 큰 전파를 거 두었으며, 후에 류인석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빼£義빼)이 되었다. 호좌의진은 후일 나라가 일제에 강제 벙합된 후 독립투 쟁으로 이어져 상해 임시정부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사 상 양평의병의 의미는 크다 할 것이다. 여기서 서울이 가까운 지평에서 어째서 서울로 진격하지 않고 제천흐로 갔올까 의심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안승우가 그 아버지 의 명령올 수행하여 류인석 의 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평의병은 류인석, 안종용. 이춘영, 안숭우, 김사정 퉁 화서학파 애 의하여 시작되고 포수령 김백선의 군사력으로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의병이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 사람 들이 지역주의를 가지고 지역 이름을 붙이지만, 당시는 어느 지 역에서 싸우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살신성인이기 때문에 투쟁의 식도 네 지역 내 지역올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평의병 은 원주 - 영월 - 제천 - 충주로 진군하면서 사방에서 의병진이 모 여들어 연합군으로 발전하고 전과를 올렸으나 의병이 관군이나 제 l부 총심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