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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신문리(新門뿔) 어구로 가서 보니 수천 군중이 있어서 만 세를 부르고, 다시 고읍면 창리(접맨)에 다다르매 “읍내로 가자” 고 주장하는 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 때 펴고 최대현은 “경성 사람이 양평에서 오늘 아침 피살된 모 양인데 그 사람은 국기플 워하여 순절한 것으로서 심히 불쌍하니 조상하지 않으띤 안된다. 그러니 양평 읍내로 가자”고 하여 부득 이 읍내를 향하여 행진하였다’는 취지의 공술 기재, L. 사법경찬관의 피고 이보원 신문조서(제2회) 중, ‘4월 3일 오 빈리(햄폈맏)의 독립운동 주모치는 피고 최대현이라 함올 들었 다. 또한 현장에서 그가 운동에 참가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 군중 속에 피고 윤기 영도 있어서 곤봉을 휘두르면서 군중을 격려 하고 있었다’는 취지의 공술 기채, 1. 동 피고 여운긍의 신문조서 (제 l회) 중, ‘자기는 양근리(楊根 里)의 낌성무(숭뿔武)란자에게 용우가 있어서 아신리(재新띤)의 도선장까지 왔더니‘강하띤빈들이 집합하여 일변 왕래 하는사람 을 조사하며, 자기에게 대하여 “동행하라”하고 “불웅하면 죽이겠 다.는 것이어서 읍내로 통행하던 중. 총 소리가 들리므로 다리 아 래 숨었다가 붙들렸다. 그 떼 피고 최대현은 군중 속에 서서 지팡 이를 들고 한창 만세를 불렀으며, 또한 군중이 옥천리(玉없뿔) 어 구에서 행진올 중지하매 동 피고는 군중들에게 “전진하라, 전진 하라”하고 있었다’는 취지의 공술 기재, 1. 압수한 기(중 제1호) . 깃대(제2호의 3 . 4 . 7) 및 운서(중 제 371 양평.3.1훈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