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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튿날 오전 4시 경 양서면 도곡리(빼용里) 노상에서 약 1천 여 명의 군중과 같이 만세를 불렀다. 이어서 4월 2일 경성(京城) 학생 2영파 이민들과 의논한 결과 3일에도 만세를 부르기로 되어 이튿날 3일 강하면민 외 다른면 사랍도 고읍면에 모였다. 그래서 자기도 그 곳에 가서 군중에게 대하여 “읍내로 가려는 사람은 손 을 들라”고 하였더니, 군중들은 전부 손을 들었으매, “모두 가려 면 가자 .. 고 하였으며, 또한 자기왜 양자는 사망하고 군중은 머뭇 거려 행진하지 않으므로 “의기 없는 놈들 뿐이구나”하고 생각하 여 고읍띤 시무소 앞에서 군중에게 대하여 “가자, 가자”고 하며 행진하라는말올고취하였다’는취지의 공술기재, 1. 피고 여운긍의 예심조서 중에, 동 피고의 판시 소위에 대하 여 판시합과 같은 취지의 공술을 기재한 것, 1. 펴고 여광현의 예심조서 중 판시합과 같은 피고의 소위에 대하여 집합한 인원 수효의 점을 제외하고서는 판시함과 같은 취 지의공술올기재한것, 1. 중인 함경호(않京鎬)의 예심조서 중, ‘대정 8년 4월 3일 조 선인 1명이 자기 집에 와서 “이 곳은 면장 댁인가? 집 밖으로 나 가자’고 하면서 강제로 외출을 요구하므로 나가 보니까 100명 가 량의 군중들이 있었는데, 자기애게 대하여 만세를 부르러 가자 고 하매 이를 거절하자, 자기를 미는 자, 치는 자가 있어서 부득 이 동리 끝까지 갔더니J 1천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으며, 태극기 4 류를 떠받들고 있다가 그 중 l류를 나에게 들라고 하므혹 이것을 지11장 3.1운동의 역사적 배경 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