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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이운동올 위하여 집합한 1천여 명의 군중 속에 뛰어 들어 조 선독립만세를같이 부르고, 3. 펴고 최대현 · 윤기영 · 이보원 · 신우균은 통월 3일 동군 고 읍면(古동面)내에서 이 운동을 위하여 모인 동군 강상 · 강하 · 양서 · 고읍 4면의 주민 약 4천 명 군중속에 뛰어 들어 태극기(중 제1호의 1-3의 기 및 제2호의 3 . 4 ' 7의 깃대)를 T히날리며 함 께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였으며, 또한 그 군중 속에서 양근(楊 根) 읍내로 가서 시위운동을 할 것인가 아닌가를 제의하자 피고 최대현은 ‘읍내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제창하여 군중을 인솔 하고 동면 옹암리(효岩里)와 용암리(龍岩里) 사이의 작은 언덕 까지 행진함으로써, 피고들은 모두 그 지방의 치안올 방해한 자 로서 피고 최대현의 전기 각 소위는 계속할 뭇에서 나옹 것이다. 제2. 펴고 최대현은 이태왕(고종 황제)이 돌아가시자 금곡(金 各) 능이 있는 곳 앞에서 사사로이 제사를 지내려고 그 비용으로 서 군민들에게 기부금올 모집하고자 기도하여 대정 8년 2월 13일 (음력 정월 13일) 경 당해 관청의 허가를 얻지 않고서 피과} 거 주하는 동리의 강(姜) 모에게 부탁, ‘태황제 폐하께서 돌아가셨으 매, 그 성은에 보답하기 위하여 능있는 곳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자하니,상하의 모든백성이 그의 자력에 따라금원올지출함으 로써 애도의 봇을 표시하여야만 될 것이므로 각각 분에 맞는 기 부를 하기 바란다’는 취지의 문서를 만들게 한 후 펴고의 양자 최 윤식(崔允植)이란 자에게 맹하여 같은 날좀 전기한 피고 최대현 재1장 3. 1운동외 역사척 배경 Y:f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