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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틀을 진압하려는 관군 및 일본군과 항전히·였다. 아울러 전 선 · 철도 풍 일본군의 군용시설을 파괴하기나 일본군 주둔지릎 공격하기도하였다. 전기의병의 전개과정올 살펴보면, 경기도에서는 양평, 여주, 이천 둥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여주에 창의소를 설치하고, 1 윌 l딩일을 전후로 봉기하여 남한산성 서 남일대 에서 세 력을 떨쳤 다. 그 뒤 두 지역의 의병이 통합하여 2천여 명에 이르렀는데, 박 순영(朴핸짜)이 대장, 김하락(<rt il1T洛)이 군사 겸 도지휘(軍Mj~~ ~I냐암따)가 되었다 2월 25일 의병부대가 넘한산성에 입성하자. 양근과 안성의병 수백 l정과 춘천의병 3천여 명도 남한산성으로 집결한다는 소문으로 친일정부를 긴장시켰다. 양평에서의 전기의병을 살펴보띤 두 갈래의 의병이 일어났음 을 알 수 있는데 당시 양평은 양근군(해根꽤)파 지평현{(Iß;平縣) 으로 나눠있던 시기로써 두 고을에서 모두 창의하였다. 양근에서는 신태형(미!값~ 1;:)이 기의하여 저l천으로 가서 류인 석(柳앓짧)과 함류하여 항전하다 류인석이 요동으로 들어갈 떼 에 따라기-서 독랩운동을 계속하였고‘ 이봉하(쑤패상)도 의병모 집 할동을 하였다. 대홍러 출신 이승룡(쑤/jc隨‘lH53-1H%)은 황 해도 해주 진관병마절도위에 있었는데 을u]사변이 발생하자 통 분함을 참시 못하고 고향인 양근으로 내려와 의병올 일으컸다. 이송룡은 양근 뿐 아니라 지평, 여주. 광주” 양주 풍지를 돌며 포 수 · 농민 둥 의병 1.000여명을 모집히-여 용분산에 본거지를 두고 . '\1 양4깅.~.l촌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