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page

지 않는데다가 파리에 간 김규식으로부터 온 편지에 따르면 열강 의 승인 전방도 그리 밝지 옷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각지에서 모인 지사들은 여운형의 현실론을 반박하며 “조선은 정부를 잃고 민심이 유리된 지 10년이나 되었으니 먼저 민심을 잡는 것이 가장 급하다”면서 거수표결에 부쳐 정부 설립 안올통과시켰다 여운형은 임시헌장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구한국의 황실을 우 대한다는 조항올 명시하자는 의견에 대해 아무리 위협과 압력이 있었다 할지라도 ‘나라를 영원토록 명치 천황에게 봉헌한다’는 말을 조칙문에 명기한 것은 국가와 백성에 대한 범죄이며, 한일 합병후 황실 근친자인 전주 이씨들은 돈과 작위를 받아 잘 살고 있으니 아찌 황실올우대한다는조항올 넣올수 있는가고반대의 사를 밝혔으나, 이 운제 또한 표결에 부쳐져 부결되고 말았다. 회의 마지막에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구에서 여운형 은 외무부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통시애 내무부 위원장에는조완 구, 재무부 위원장에는 김철이 선출되었다 여운형은 이를 수락 하고 임시정부의 업우에 임했다. 나는 외무부 위원장 자격으로 프랑스 영사 윌당을 방문하여 대 한민국 임시정부의 전말을 설명하고 양해를 얻어 보호를 의뢰함 과 동시에 프랑스 정부에도 그 뜻을 타전하였고. 중국의 〈신문보〉 〈신보) (민국일보) (시보〉 와 영자 신운인 〈노스 차이나 데일리 뉴스) (차이나 프페스) (상하이 타임즈〉 퉁에 조선의 독립운동 제3부꽁양이운형 선생과3.1푼동 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