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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보(益l止報))의 주필 서겸을 만나 신한청년당의 거사에 대해 말 하고,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진정서 사본을 전달했다. 진 청서의 말미에 서명한 이름들(願子復. 吉天輔)은 여운형이 신변안 전을 위해 사용한 가명이었는데, 이 진정서가 〈익세보〉 에 전재된 것은 여운형 이 그곳올 떠난 지 20여일이 지난 2월 18일자였다. 그는 장사꾼으로 변장하고 있었으나 만주에 들어서면서부터 는 일경들의 취체가 심했다. 형시들의 눈을 피해 장춘에 도착하 자 그는 심영구(沈永求)의 집에 묵으면서 그 무렵 길림에 있는 족 숙 여준(呂準)에게 보내는 펀지를 은밀히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여운형은 편지에서 자신이 세운 신한청년당에서 파리강화회 의에 조선 대표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하고, 이제 조국 독립의 호 기가 찾아왔으나 열강들이 주목할 만큼 전 민족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말했다. 끽 또 그는 러시아 연해주의 우수리스크(소왕령)로 가서 그곳에 체류하고 있던 박은식(朴股植) . 문창법(文昌範) . 조완구(趙院 九)를 만나 이 사실올 알리고 지금이 독립운동올 일으켜야 할 때 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디들 기뻐하면서 일부는 장차 상해로 가 겠다고 답했다. 여운형은 이동냉(李束寧) . 원세훈(元世勳), 그리 고 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복(李升復) 형제를 만나 사 정을 알리고 다시 인근의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로 갔다. 블라디보스토크 외곽에는 구한말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히는 신한촌(新함村)이 있었다. 여운형은 그곳 한 지13부용양여운형 선생과 3.1운동 ?lJ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