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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가기는 가되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내가 누구인지 알 리가 없다. 지도상에 보더라도 조선반도는 쌀알 만콤밖에 나 타나 있지 않고‘ 코리아란 나라는 거의 알러지지를 않았다. 내가 만일 정식대표라면 회의석상에 좌석이 있고 발언권이 있겠지만 나는 방청인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가서 일제의 학정 을 폭로하고 선전하겠다. 그러나 나 혼자의 말만올 가지고는 세 계의 신용올 얻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신한청년당에서 서울에 사 람을 보내어 독립을 선언해야 되겠다. 가는 그 사람은 희생을 당 하겠지만 국내에서 무슨 웅직임이 있어야 내가 맡은 사멍이 잘 수행훨 것이고우리나라독웹에도보탬이 될 것이다., ~H 이 같은 김규식의 제안에 따라 여운형 이하 신한청년당 당원들은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끽-처에 들어가서 궐기를 촉구하기로 했다. 5. 만주 · 연해주와 여운형 여운형이 만주를 향해 상혜를 출발한 것은 19L9년 l월 20- 27 일경이었다 11’ 그가 국내로 가지 않고 만주와 연해주로 간 것은 그때까지 해외 독립운동의 본거 지가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 지역에 흩아져 살고 있던 조선인은 모두 l 백 수십만 명 에달했다. 여운형은 우선 북경에 들러 천주교 발행의 중국어 일간지 〈익 .)(J6 양굉.~.I뭇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