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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왔다. 그후 파리로 떠날 낌규식의 여권올 알선해준 것도 여운형이 었다. 여운형은 1917년 〈노스 차이나 데일리 뉴스) 1<))의 진한명 (때漢明) 기자가 소개하여 손문올 처음 만났으나 기깝게 지내지 는 못했었다. 두 번째로 손문을 만난 것은 그가 YMCA활동을 통 해 가까이 지내던 중국 언론인 서겸(徐짧)을 통해서 였다. 북경정 부의 사법부차장까지 역임한서겸도여운형의 기독교계 인맥중 의 하나였다. 그를 통해 다시 만난 손문은 여운형을 정중히 대접 해주었고, 여운형은 그 자리에서 조선대표를 파리강화회의에 파 견하는 문제를 상의했다. 손문은 뒤에 국민당 정부의 외교부장올 역임하게 되는 중국 핵심 외교관들인 진우인(陳友仁)파 오조추( 펌朝樞)를 소개해주며 파리에 가서 김규식과 동심활통(同心活폐j )할 것올 당부하고, 김규식이 시용할 중국 여권까지 만들어주었 다. 파리강화회의는 19L9년 1월 18일부터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강화회의 때문에 프랑스로 가는 배표가 그해 3-4월분 까지 전부 매진되자 활동적인 여운형이 다시 나서 손문의 광동정 부 대표단 불어 통역인 정육수(윗I‘fti秀)를 통해 배표를 입수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여운형과 김규식, 그리고 신한청년당 당 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김규식은 다음과 같이 말 했던 것으로 그의 부인 김순애(金淳愛)는 회고했다. 지1.3부꽁양어운형 신생괴-}J운동~ 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