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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은 평양에서 열린 장로교 총회에 참석했다가 중국으로 떠나는 김규식을 직접 배웅했었다. 김규식은 총독부의 탄압을 용 인하고 침묵하는 것이 신앙을 지켜준다는 생각은 타락이라면서 미국 선교사들이 지배하는 조선을 떠나 중국으로 훌쩍 망명했던 것이다. 김규식의 망명을 목격한 여운형은 자기도 이 질식할 것 같은 식민지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는데, 이 시절의 여운형 생각에 대해 그의 동생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형님은 밤낮없이 생각한 끝에 일본인의 감시가 심한 국내에서 자유로운 활동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의 힘, 연 약한 우리 민족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조국 독립을 이룩할 수 없 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형님은 해외로 나갈 것을 생각했 다'i) 마침내 그는 1914년 말 친구 조동호(起束祐)와 함께 중국 유학 의길에올랐다 3. 상해에서의 기독교인맥 그가 입학한 금릉대학은 본래 문리과 · 의과 · 신학과의 3개과 로시작한남경서원이 미국장로교아카데미,유니온기독교서원 과 1910년 합병되면서 사립 금릉대학으로출발했는데, 이 과정에 서 신학과가 없어졌다. 그래서 당초 신학과에 들어가려고 언더우 296 양핑3. 1훈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