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page

(44) 정복훈{웰福薰) 이 명 : 萬福 정복훈(鄭福爾, 1899 - 1972)의 자는 만복(萬福) 본관은 경주( 慶州)이다.1899년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802번지에서 정 봉귀(鄭페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인 정복훈은 사용하지 않고 고향에서는 정만복(鄭萬福)_Q_로 부르고 있다. 그는 1919년 3월 31일 강하면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주 통한 이 보원과는 이웃에 거주하면서 지주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고 있던 중 서울에서의 3.1만세운동을 접하게 되면서 윤기영과 이보원이 주도한 3월 31일 강하면 면사무소 앞에서 거 행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3일에도 옥천면에서 4개 면민 4천여 명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행진을 할 적에도 참여하여 독립 만세를 부르고 양근읍내로 행진하다가 이를 탄압하는 일본 경찰 에 의해 시위가 중단되고 해산되었다. 융기영과 이보원은 현장에서 주동자로 체포되고 그는 강을 건 너 집으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다가 1972년도에 졸하였다. 후손으로 아들 정복선이 농사를 지으면서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자료 및 문헌 : 강상변 흉양수 증언】 (45) 정윤득(動允得) 정윤득(鄭允짜)은 항일운동자다. 정윤득(윗ß允得)은 양평군 옥 처12부 양명의 3.1딴세운동 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