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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를 부르며 돌아다녔다"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그러연 정병 헨에게서 들은 독립선언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반세룹 부르면서 다·녔던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그렇다 ”고 하였다. 총교에 대한 질문에는 “불교의 선종이다. 나는 혼자이다. 모친 은 내가 6세 때! 부친은 9세 때에 사망하고 19세 떼에 중이 되었 다.,고답변하였다. 또 묻기를“‘정병헌에게서 독립선언에 대하여 듣고 어떤 감상 이 있었는가7 질문에는 “기쁜 마음이 들었으므로 파고다 공원에 가서 만세를 부르고 성윈할 생각이었다"고 진술하였다. 1919년 3월 1일 경성부 파고다공원에서 이게창 · 오한영 · 김 싱국 · 김병수 · 이굉상 · 잉학잔 · 김진호 · 박상전 퉁 16명이 독 립만세플 외치고 활동하다가 일경에 잡혀 들어가 싱역 7휠올 선 고받았다. 이세춘외 16명에 대하여 모두 3년형의 집행유예사 선 고된 사실 기록이 재판문서에 나타난다. <참고자료 및 문헌 : 독렌훈통사자료집(5), 독립운동사자료십( 13)> (37) 이용준{李容俊) 이용준(李容俊)은 양평읍 공홍리 출신이다. 그는 농업올 경영 하면서 37세의 나이로 1919넌 3월 2'-1일 오후 2시경 양평옵 양근 리에시 군중 4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양핑융 시쑤소로 몰려갔다. 이플은 시쑤실 내에 들어가 면장 긴잔재와 띤서기 서병일올 끌어내어 독휩만세플 강요하고 윤러갔다는 것 져12부 양평의 .:\.1반사l온품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