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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철, 심원각 둥은 태(참) 90대를 맞고 방면되었다. 전석현은 7 년 후에 돌아왔고 이종성은 일제 탄압을 견디기 어려워 만주로 건너갔으나 생사를 알 수 없다. <참고자료 및 눈헌 : :). 1독립운동설록. 안상복씨 제공자료】 (36)이세춘(李世春) 이셰춘(李 ltt휴, 1884 - ?)은항일운동가다. 본적이 양평군용운 면 신점 리 34번지이다. 이세춘의 주소는 서울 경성부 숭인동 2번 지 사립 중앙학교 기숙사였다. 당시는 25세의 학생 신분이었다. 그는 검찰 진술에서 ‘3월 l일에 둥교하였더나 상금생인 정병 헌(뺏ß짜원)이 l괄하기를 오늘 오후 2시에 파고디· 공원에서 손병희 등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므로 그 시간에 그곳으로 가서 성원하 라고 하였는데, 나는 교사인 김용태가 한성은행에 가서 돈 10원 을 찾아오라고 하묘로 그것을 받아 가지고 종로까지 갔던 바, 군 중이 만세를 부르면서 오는 것을 만났으므로 나도 거기에 들어끼· 서 만세흘 불렀다. 그렇게 되었으므로 파고다 공원에는 은행에 갔기 떼운에 가지 옷했던 것이다 H라고 답하였다. ·‘만세를 부르면서 어디를 다녔는가~l'라는 질운에는 ‘·종로통에 서 서대문으로 가 프량스 영사관 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남대문 정거장으로 갔다가 방향을 돌려 대한문(大팩門) 앞으로 와서 거 기서 횡끔정통(파~IIIHill)올 거쳐 수표교(水標댐) 거 리를 지나다 가붙잡혔다. 그떼의 인원은많아서 숫자는모르겠으나각처에서 2(H 양잉j.l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