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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는 농업을 전업으로 하여 성실히 살아 왔다. 그는 당시 21 세 나이로 1919년 3월 29일 양근읍으로 장올보러 가기위해 교평 리 도선장에 나와 있었다. 나루터에는 벨써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나루터에 모인 많 은 군중들은 나라사정을 틀은 이야기들을 니누고 있었다. 조선독 립을 새개에시 이띠 숭인하였다. 일본도 우리나라른 내 놓으려고 준비 숭이다라는 퉁 이야기가 무성했다. 이떼 송학리에 기주하는 신석영이 나루터에 누군가가 세워 놓 은 태극기를 뽑아돌고 여러분 우리나라가 독힘이 되었으니 끼쁘 지 않소! 하며 독립만세를 불러 그는 교평리에 거주하는 신 현구, 홍 우봉과 여기에 호웅하여 만세를 불렀다. 순식간에 나루터 주 변은 만세 시위장A로 바뀌었다. 이때 강 건너 갈산에서 시위 군 중올 향해 일정이 총을 발사하여 해산 되었다. 시위장에 있딘 유병원은 일경이 쏟 총알이 복(우측)을 관롱하 여 쓰러저 있는데 일경이 매플 타고 건너오} 새마리펀으혹 뒤통수 를내리친후양평경찰서로연행되어 간것올가속과집안어른들 이 경찰서로 찾아가 항의를 하고 치료플 받71] 하여 생명에는 지 장이 없었으나 일생동안 휴우 중으로 고생올 하였다. 후손으로 손자강진. 도진,해진이 있다. 【 참고사료 및 운헌 : 본서, 양평꾼 융띤별 독펌만세시위 ·강상연.편】 2'i6 양:녕5. 1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