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page

군보병 참위, 소대장, 육군 부위. 육군 정위, 육군 참령, 대구진 위대 대장을 지냈다. 벡당은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고 국권이 침탈되자 관직을 버리고 단신으로 민주로 건너가 김좌진 · 지청 천 · 김혁 · 조성환 · 홍진 - 김규식 · 황학수 · 양기탁 · 이회영 · 이상룡 · 김동삼 퉁 동지들과 항일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1910년(경술) 신홍학교 부교장, 1914년 부민회 학무부장, 1917 년 백서농장 훈독, 1919년 한족회 외부사장, 임시정부 남만주 서 로군정서 군정청장, 신홍무관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1923년 4월 대한독립군단 제1연대장, 대한통의부 군사부장 퉁 요직을 맡아 한국독립운동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았다. 그는 독휩투쟁을 하다가 1932년 4월 자수하여 1945년까지 10여 년간 여생을 지냈으나 친일활동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자수 때운에 독립유공자로 평가받지 못하니,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처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알 수 있다- 한국사데이터 베이스에는 ·‘민족주의자로서 디않1J-f合을 기뻐하 지 않고 1913년 4월 러·林省 3훤딪tJ縣 ?¥HLJ로 도향하여 大韓獨立'i:P. 뼈에 투신합. 1924년경 太韓獨立軍l땅l 제l연대장이 되어 민족운 동에 분주해 왔으나 1932년 전향하여 p상衝흉(하얼빈) 總領렐¥6합 뽑에 .7-1수신고서를 제출함”으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자료 및 문헌 : 용의조선인명부, 광탄강콕, 백운문화(제5호) , 한국독립운동사, 양평독립운동사자료집 ,한국사데이터 베 이스】 서i12부 양핑의 3.1딴세운동 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