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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 신현구(辛顯求) 신현구(‘F願求, 19이 - 1987)의 본관은 영산(磁LlI)으로 1901 년 경기도 양평군 강상변 교평리 584번지에서 신회락(현웹洛)의 “ 대똑사로태어났다. 그는 농업올 전영으로 하면서 성실히 실아왔다. 그는 당시 19 세 나이로 1919년 j월 29일 양근읍으로 장을 보기위해 이웃에 사 는 홍우봉과 합께 교평리 나루터에 나와 있었다. 이전 날인 3월 2내일 양근읍의 만세시위로 장이 서지 않아 이날 은 양근읍장에 가려고 100여명의 군중이 모여 있었다. 나루터 에 모인 많은 군중들은 나라사정올 들은 이야기틀올 니­ 누고 있었다. 그중에 조국이 독협되였다는 딸도 있었다. 그떼에 송학랴에 거주하는 신석영이 테극기를 들고 “여라분 우리나라기­ 독램 되였으니 기쁘지 않소!"하며 독립만세를 부르자 그는 여기 에 호용하여 함께 만세를 불렀마. 순식간에 나루터 주변은 만세 시위장으로 바뀌었다. 이떼 강 건너 갈산에서 일정이 시위 군중 올 향해 총을 발사하묘로 해산되아 집으로 돌아갔다. 후손으로 아들 신영렬이 농협중앙회 양평군지부에서 근부하 다가 퇴 직하여 가업을 이어 기-고 있다. 【 참고사료 및 문헨 : 본서‘ 양평군 읍면멸 독립만세시위 ‘강상띤’펀, 신영련,유용옥중언】 21H 양핑~.1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