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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전개하던 한봉철은 1936년 연길현(延꼼縣)에서 일본군과 교 전중에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하였다. 현재 종손인 한성우가 양근리에 거주하며 지사의 유지를 받들고있다. 【참고자료 및 문헌 : 독립유공자공훈록, 독립운동사(2), 신분장지운 원지(경찰청) , 독립운동사자료집별집(5),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판결문(경 성복싱법 원 ,1919.8. j 1.)> 2 서훈(했勳)을 받지 못한 독립유공자 (1 ) 곽수영(郭훌榮) 곽수영(郭,잖榮, 1874 - 195이은 1874년 4월 24일 개군연 주읍 리 6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부친에게 한문학을 배운 의리 에 밝은 사람이다. 1895년 21세에는 명성황후가 학살당하고 올 미의병이 봉기하는 혼란한 시기를 경험했고,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일본의 조국과 민족을 강제 점령하는 퉁 만행을 보면서 분노하고있었다. 4'5세 떼인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될 때에 김영규 이 호숭 둥과 주도적으로 시위애 나섰다. 그는 4월 5일 개군면 일대 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될 떼에 이영남 · 이호숭 · 이철형과 태극 기를 만들고 시위를 주도하였마. 이에 일본 헌병이 총을 난사하 230 양평3.1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