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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이 기재되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부친 최대현의 판 결문과 분헌자료, 제적부에서도 확인된다. 부자(父+)가 함께 광 무황제 서거에 대한애도분위기를활용하여 만세운동을고조시 키려 했던 흔치 않은 사례로 주목된다. 【참고자료 및 운헌 : 독립유공자공훈록, 양평인물지(上)】 (35) 최복현(崔福鉉) 이명 : 崔雄漢 1906 7_ 14 - ? 본적 : 경기도 앙평군 용문면 맘능리 주소 : 서울 성북구 정능 192-272 1990년 애족장 문화운동 관련 1939년 중앙고둥(마l央힘뿔) 교사(敎eîlì)로 재직 중 청의시간o펴 義jP.j:間)에 항일사상(抗 디 얹想、)을 고취하다가 19ι10년 재학생 5명 을 주도tt:평), 5인독서회(A讀렇會)를 조직, 항일활동 중 일경에 체포, 1942년 9월 1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볍위반죄(保安法 違反罪)로 정역 1년형올 받고 복역 1943년 l원 5일 출옥한 독립 운동가이다. 최복현의 본관은 경주로 일벙 웅한(雄淡)이라고 한다. 지사는 1939년 서울 중앙고보학교 지리교사로 재직 중에 임진왜란 역사 의 이순신 장군 전적이야기와 백두산정계비 퉁 내용을 강의하여 항일사상을고취시컸다.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는 예언 사실과 1940년부터 재학생 5명 22'1 양평~. I몫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