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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부엄 이후 19'10년까지 와히아와 한인기독교회에서 12 년간 목회를 하띤서 하와이 한인사회의 지화로 활동하였다. 와 히아오}는 오아후 섭의 중앙에 있는 도시로, 이곳에 한인기독교 회가 설립된 젓은 191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 평신 도 에배모임으로 시작되어 1919년 20명의 한인들로 현재의 팝 (Palm)가 끔자락에 위치한 집을 세내어 교회를 서l웠는데, 주중 에는 한글학교로 사용하였다. 1924년애는 길 하나 건너 레후아 (Lehuu)가 246번지로 교회를 옮기고, 와이알루아 교회의 최창덕 목시플 시깐제로 청빙하였다. 그 뒤 칫 전임꼭회자로 부임한 사 람이선생이었다. 선생은 와히아와 한인기독교회 에서 목회에 힘쓰는 한편, 교회 부설 한글학교를 확장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까지 두루 가르치 며 교포 2세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그리고 193L년에는 하와 이 학생모국방문단을 이몰고 귀국하여 6월부터 9월까지 석 달간 머무르며 중앙YMCA회관 둥지에서 하와이 동포의 근황과 신앙 생활을 얄리는 강떤을 하였다. 다시 하와이로 돌아온 선생은 한인기독교회 일로 분주하였다. 193'1년 7월에는 〈한인기독교보〉를 창간하여 편집 겹 발행인올 맡았는데, 창간호 「편집 뒤의 말」 에 〈신생명〉이 폐간된 지 꼭 10 년 만에 다시 글을 쓰려고 붓대를 잡으니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교차한다며 남다른 감회를 표시하였다. 또 「조선감리교회 선교 50주년을 맞으면서」라는 논단올 통해서는 국내에 장로교회와 감 져12부 양평의3.1만세운동 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