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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수와 양평에 가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고 그들의 후손 및 마을 노인들이 중언하고 있다. @기타 현재 가평군 설악면도 1942년 이전에는 양평군에 속해 있었 다. 따라서 3.1운동 당시엔 설악면 출신 독립운동가들도 양평주 민으로 활동했겠지만 본고에서는 가평군과 중복됨을 피하기 위 해 생략하기로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설악변 위곡리에서 출생한 이규봉(李_Ë때)은 1919년 삼일독립만세운동 당시 가평군의 지도 자였고, 그의 아우 이규붕(李圭臨)과 아들 이윤석(주JôL짧), 조카 이만석(李파짧)도 가평과 춘천지역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 하였음이 그 지역 항일운동사에 기록되어 있다. 1919년 3월-4월 전국애서 만세시위 집회 횟수는 조선총독부 에서 집계한 공식적인 통계로 1,209회였고 참가자수는 7백50만 명이 훨씬 넘는다. 이 가운데 경기도가 283회로 16만 8천여명에 달하였다. 그리고 1952년 국가에서 조사한 피살지수는 경기도가 177명이 신고되었고 이 가운데 양평군애서는 10명이 피살된 것 으로 접수되었다. 물론 사건 발생한지 34년이 지났고 일제강점 기와 6.25동란퉁격변기를거치면서 자료와중인이 많이 없어져 정확한 피살자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가기록원에 기록되어 제2부 양명의 .:U만세올동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