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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경이 쏟 총알이 목(우측)을 관통하여 쓰러져 있는데 일경이 배 를 타고 건너와 개머리판으로 뒤통수를 내리친 뒤 양평경찰서로 연행되여 갖은 고초를 받았다고 한다. (중언 유숭진) 교평 리 에 거주히는 신현구(당시 19세). 홍우봉(당시 30세)은 일경의 무자비한 발포로 인해 집A로 돌아갔다고 한다. (신영렬, 유용똑 증안) 또한 강상면 만세시위가 있었던 2일 후에는 송학리 893번지에 거주하는 윤기영(당λ1 48세)과 병산리 801번지에 거 주하는 이보원(당A] 50세)은 강하띤의 최태현(당시 %세) • 양서 면의 신우균(당시 32세) 둥과 강하면시무소 앞에서 독립만세 시 위를주동하였다. @강하면 3월 29일 강하면에서는 면사무소 앞에서 300여 명의 동리민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날의 시위는 오위장 출신으로 의병활동도 했던 @세 된 최대현(崔太鉉)이 주도하였다. 최대현은 고종황제가 숭하하자 제사지낼 비용올 군내 유지들에게 기부받을 목적으로 2월 13일 “지난 정월 태황제 퍼|하께서 돌아가 셨으미L 그 성은에 보담하기 위하여 놓 있는 곳 앞에서 제사를 지 내고자하니,상하의 모든 백성이 그의 자력에 따라긍원을지출함 A로써 애도의 뭇을 표시하여야만 펼 것이묘로 각각 분에 맞는 기 부를 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문서를 만들어 면시무소의 퉁사기로 제2부 양평의 3.J만세운동 13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