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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교평리나루터에 모인 군중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다. 교 평나루터는 강상면민들이 양평읍의 양근5일장을 보러가거나 읍 내에 다른 볼일올 보기위해 매일 많은 수의 사람들이 왕래하는 도선장(많船場)이다. 송학리에 거주하는 신석 영(낀앓永, 당시 39 세)이 ]9J9년 3월 29일 갈산면 양근리 장터에 가려고 교평리 도 선장까지 나왔다. 바로 전 3월 24일 장은 양평읍내의 만세 시위 로 인해 장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고 한다. 이날은 교평리 나루터 에 양핑읍 장에 가려고 100여냉의 군중이 모여 있었다. 나루터 에 모인 많은 군중들은 나라사정을 들은 이야기를 나누 고 있었다. 즉 조선 독립을 세게 각국에서 이미 숭인 하였다. ‘일 본도 우리나라를 내 놓으려고 준비 중이다’ 라는 이야기가 무성 했다‘ 이 말올 들은 신석 영은 나루터에 누군가기- 세워놓은 태극 기룹 뽑아들고 ·여러분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었으나 기쁘지 않 소’ 하띠 대한똑휩 만세를 불렀다. 이에 군중 1α)여명도 여기에 호웅하여 만세를 불렀다. 순식간에 나루터 주변은 만새시위장으로 바뀌었다. 일경은 강 건너 갈산에서 시위 군증을 향해 총을 발사 하여 해산되었다. 신 석영은 만세를 선통했다 하여 끌려가 후에 1년형을 선고 받았으 며 일제 재판과정에서도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었다고 기쁨에 넘 쳐 만세를 부른 것이 왜 잘못이냐며 자신의 주장을 조금도 굽히 지않았다고한다. 그날 시위장에 있던 송학리 에 거주하는 유병원(당시 21 세)은 I:\Cl 양굉.u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