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æ양평읍 3월 24일에는 양평장날 양평읍(당시 갈산면,이하 같다)시장터에 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는 연희전운학교 서기인 이진규 (李끓댈)가 다른 지역과 달리 양평군에서만 독립운동이 조용한 것 을 유감으로 여기고 독립선언서 수십 매와 대한독협회(大韓爛5L 會) 명의로 된격문수십 애를가지고 3월 23일서울을출발하여 양 평으로 왔다. 대한독립회 명의로 된 격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에 각 경찰서에서 형벌을 당하는 형제 자배를 미 련한 무 리처럼 보고, 또 태황제 고총황제를 암살하였다. 2천만 동포는 나라 없고 입금 없는 백성이 된 지 어언 10년의 능욕을 당하였다. 나라 없는 노예가 되어 시는 것보다는 오히러 조선꼭렵만세를 부 르고 총깔 밀에서 죽는 것만 옷하다. 독립외 시기는 왔다. 이 시 기를 놓치면다시는 만나기 어랩다. 뱅렬히분기하여 민족자결을 하고 독립기를 높이 게양하여 헝밸 속에 있는 형지l 자매를 구하 고 역적의 부리를 잘게 모막 쳐 우리들의 마음속을 상쾌하게 하 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 통포여! 이 시기를 잃지 발고 독림기를 번득이고 맹렬히 분기하여 독립하라 이진규는 장터에 모인 1 ,000여 군중들에게 “조선띤족은 이 기 회를 타서 일본 제국의 꿀레를 벗어나 독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는 취지의 연설을 하고 독립선언서와 위의 격문을 바l포하면서 독 림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군중들은 이진규와 합께 독립만세를 u-, 양평3.1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