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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면과단월면 청운변의 만세시위는 용두리에서 있었는데 단월면 출신 몇 사 람과 함께 모의하여 일어났다. 3월 23일은 청운면 용두리 장날이 었다. 단월면 덕수리 신재원(申在元)과 부안리 김종학(金행.쩔)은 천도교인으로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장으로 향하던 길에 동면 여 물리(餘%뽀)에 있는 무명교(無名橋) 아래에서 양동연 쌍학리 정 경시(鄭짧l함) ) 청운면 갈운리 민주혁(閔돼i.j;) 풍을 만나 용두리 장터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신재원이 광목을 내놓아 “조선독립 기(朝蘇獨立雄r이라고 쓴 깃발 3개를 만들고 시장 안에서 신재 원과 김종학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선도했다. 이에 200여 명의 짖μ꾼들이 호웅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에 들어갔 다.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주도지들을 체포함으로써 시위대가 해 산하였다. 청운면과 단월면 만세시위를 주통한 이들은 천도교인 들이었다. 한편 다음날인 24일 양평장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들도 부 안리 출신으로 신재원의 사위인 곽영준파 역시 부안리 출신의 이 진규가 있었고, 당시 43세의 박창식(朴昌植)도 용두리에서 만세 시위중 일경에 쫓기다 붙들려 주재소에서 태형을 맞고 풀려났는 데 그는 한학자로 보룡리에서 훈장올 하고 있었다고 한다. 제2부 양평의 3.1만세운동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