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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주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참여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당시 수능리 이정봉은 서울 종로 3가에 소재한 독립운동 단체 인 엽우회(일명 사냥꾼모임)의 청년 42명중 한 사람으로 3. 1만세 운동의 기획자인 여운형에게 밀지를 전하고 전달받곤 하였다. 3월 24일은 양평읍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기로 되어 있었다. 이떼 김영일은 정배리 대표자로 이정봉과 연락을 취하고 은밀히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동네 사람들과 태극기를 준비 하는데 원(동그라미)이 잘 안되어서 대접을 엎어놓고 원을 그려 서 태극기 100여 개를 만들었다. 지사는 3월 24일 새벽 숙부 김 민현(1878-1952)과 외숙 박중빈(1881-1860)과 함께 양근 읍내로 발길올 재촉하였다. 이날 이성기 · 유근학(정배) . 이우성(매곡) · 조성렬(잡실) . 어인형(문호리) . 문호리 바깥말의 이순창 · 서 후리 이정봉0901년생) 둥도 양근 읍내로 출발하였다. 3월 24얼 김영일은 정배리 책임자로서 동네 사람들과 비밀리 에 만들어 둔 태극기를 치롱(싸리가지로 만든 독 같은 것)에다 100여 자루를 넣고 돌맹이 몇 개로 눌러놓고 둥에 지고 말고개를 넘어가 보거리애서 모두 만나서 머물렀다. 그리고 일부는 읍내로 들어가고 일부는 출입자를 통재하였다. 서종면 만세시위 참여7-1들은 양평읍내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 이는 장날을 기하여 일어난디는 것올 사전에 미리 알고 있었고, 양평의 동부지방인 용「문, 양동, 개군, 단월 둥은 지평띤에서 함께 하기로 되어 있었다. 당시의 본부는 갈산에 두고 서로 연락올 취 제2부 양평의 3.1만세운동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