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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어 의향 양평올 더욱 의향탑게 빛낸 인물 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1949년 4월 29일 사망하여 용문띤 중원려 에 묻혔고, 1995년 대통령표창이 추서 되었다 나 김극선의사 의사의 호는 영독(靈갑)으로 별명은 경덕(鎬폈)이다. 함경남도 정평군 춘유면 영흉리에서 1878년 1월 17일 출생하여 양평에서 활통했다. 3.1독립만세시위운동이 벌어진 1919년 3월 l일 오후 8시 서울 에 왔는데. 그 이유는 살고 있던 양평에서 평양의 신학교에 가는 도중 걸어 왔기 때문에 다리가 아파 평소알고 지내던 차상진 집 에서 치료하고 있던 며칠 후인 3월 12일 ‘제2독립선언서’ 또는 ‘12 인의 장서’ 라고도 하는 애원서에 차상진은 물론 양평군 용문면 중원리 출신인 문성호 의사 풍과 함께 이름을 올린 12인의 한사 량이다.3월 12일 다른 의사들과 함께 종로의 보신각 앞에 나가 문일평 의사가 애원서를 낭독한 현장에 참여하는 퉁 주도적 역할 올 하다가 왜경에 체포되어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혐의로 8개월 형을선고받고옥고를치렀다. 그는 양평군 지평면(*당시는 ‘지제면’ ,이하 같다) 지평리에 거주 하면서 용문면 화전리 교회에 다닌 기독교인으로서 애원서 사건 으로 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룬 후에는 신학교를 졸업,목사로 임 직 OJ:동변 고송리에 있는 고송교회 동 양평군 관내 여러 교회에 J20 양맹3.1윤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