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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행통애 들어갔다. 이날 12시경 차상진 · 운성호는 애원서 1통올 휴대하고 영홍관 올 나와 인릭거를 타고 조선총독부로 가서 2천만 조선동포의 대 표임을 밝히고 당딩하게 총독면회를 요청하였다. 이에 총독부 측 에서는 공동북평(τ熾北平)이라는 고둥관이 나와 다른 고등관 2 명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총독이 부재중임올 알리줌으 로 가지고간 분서를 반드시 총독에게 전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떼 고둥관들은문서를 읽고나서 “조선인으로서 조선의 똑립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조선은 아직 똑림할 놓랙이 없다고 생각 합니다. 특히 조선의 독립이라는 것이 일본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 므로 이 운서는 일본정부에 전해 줍 따름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보통사람들은 순사니- 일본 헌병만 눈에 띄어도 줄행 랑올 칠 때였음에도 조금도 기죽지 않고 이라한 행동을 했던 것이 다.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 중 다른 내용은 전해지지 않으나 고 동관들의 이야기에 일봉인들의 포악싱올 꾸짖고 능멸하며 자주독 립의 당위성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올 것이다. 그러고는 경부총감 부에 가라고 하여 두 사람은 그곳에 가서도 독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후순사에게 인도되어 종로경찰서로가서 체포되었다. 그날 오후 나머지 지사뜰은 사전에 짱 계획대로 종로의 보신 각 앞에 나가 수백 1정의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운일핑이 애원서 를 낭독했다. 사람들이 구픔처 펌 모여들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길 을 멤추고 경청하는 가운데 무장한 왜경들이 떼로 출동하여 이들 116 양펑.'1. 1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