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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부서웠고! 독립신운올 비롯한 비밀신문이 무려 수십 종이 발 행되어 돌며, 거리마다 만세소리가 물끓듯 척이 컸는지라. 일경 은 말을 타고 3R 가량이나 되는 철망치를 휘두르며, 소방부는 몽둥이를 들고 발휩}듯이 우리 동포를 사상케 하였고, 거리며 동리 어구마다 변장한 왜경(얹향)이 시서 가헤(加害)를 하니 그 수 부지기수(不쩌l其敬)라. 그럴수록 만심의 티는 애국의 지정(至 精)은 더욱 더 고양의 일로를 달렬 뿐이었다” 시위대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시민들이 합세하여 함께 만세를 불렀다. 당시 경성여자고퉁보통학교 학생이었던 한국 최초의 여 기자 최은회(崔恩 랍) 여사는 그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독일 영사관에서 희정하여 의주통을 지나갈 적에는 길가에 냉 수통이가 즐비하게 놓이고‘ 평양수건올 쓴 할머니들이 지켜 서서 바가지로 물올 떠 주다가 바가지째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부 르던 것이 펙 인상적이었다 ... 우리 일대는 거기서 숭례문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 진고개 골목으로 들어섰다 ... 젤 틈이 없 는 좁은 골목이라 본정 2정목에 이르러서부터는 몽땅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일제 상가가 모두 떨쳐 나와 협 력하였다 ... 수갑이 나 포숭올 사용할 겨를이 없었다. 헌병들은 양편 손에 한 사람씩 손목올 잡고 남산 밑에 있는 경무총감부로 연행해 갔다. 군중들 은 끌려가는 길에서도 힘차게 만세를 불렀고, 총감부 마당에 꿇 어앉은 사람들도 새 사람이 잡혀 들어올 적마다 마주들 바라보며 제1부 힘 J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