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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했다. 그날 대힌문 앞 광장에는 광부황제의 돌연한 죽음을 애도하는 조선팔도의 유생들이 엎드러 곡하는 것을 많은 남녀노소들이 운 집하여 지커보고 있었다. 파고다공원의 시위대열에 앞서 검은 제 복을 입은 학생들이 2 , 3벙씩 조를 지어 먼저 달려오더니 군중들 속A 로 흩어져 들어가 모7.1 를 벗어 들고 열변을 토했다. 학생들 을 에워싸고 있던 군중들이 독립만세를 높이 외치자 금방 군중 전체에 전파되어 딴세소리가 대한분 광장을 뒤흔들었다. 상인들 은 점포를 철시하고 뛰쳐 나오고, 인산(因U J)을 구경하러 시골에 서 상경한 유생틀, 핑안도 수건을 쓴 부녀자들, 백 립을 쓴 노인들 남니노소를 가리지 않고 가담하여 몇 심만의 인파가 서울 거리마 다 넘쳐났다. 대열은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각국 영사관, 일자l 주 요 기관 둥올 누비 며 나갔다. 행 렬은 꼬리를 불었고1 대 열마다 한 번씩은 덕수궁 정운 앞에 당도하여 대한문 안으로 몇 걸음 들어 까서 황채의 빈전올 향히-여 절하고 불러갔다. 해가 질 때까지 복 이 터져라 만세릎 부르며 행 진하였다. ‘조선독펌신문’을 비롯한 여려 종류의 지하신분과 격운들이 시 가에 배포되었다. 이날 전주에서 상경하여 서울 시가지 시위광경 을 옥격한 한 사람은 당시의 시위광경을 이 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 .. 그떼 인심은 극도로 풍요되고 학생은 교복올 벗고 ú 衣에 흰 한팅을 쓰고 서로 만나는 대로 인사뿐이요. 딸은 하나도 건네지 않고 이처럼 학생들의 투의(1해파)는 불타고 있었다. 거리의 긴장 101 양평:\.1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