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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존재는 滄海(창해)의 一粟(일속)으로 吾生(오생)의 須叟(수수)함을 슲퍼하지 않을 수 없다. 不出世(불출세)의 天縱之聖(천종지성) 孔子(공자)의 77세손이며 중시조 회원군의 24세손으로써 淵源(연원) 깊은 巨族(거족)의 후광을 입어 영특하고 강직한 성품을 지니고 태어난 공은 어려서부터 민족의식이 투철할 뿐 아니라 精思力踐(정사역천)하는 실천적 의지가 강했다 한다. 항시 崇先裕後(숭선유후)의 덕성을 길러 안으로는 가문의 薰風(훈풍)을 배양하고 밖으로는 진충보국의 뜻을 간직하여 오던 중 국운이 否塞(비색)함에 한일합방이라는 비운을 맞게 되자 독립만세운동이 거족적으로 전개되는 틈을 타 親弟(친제) 석윤과 더불어 적극적인 활동을 해 왔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경에 체포되어 가진 고초를 당했으며 이로 인하여 金石黼黻(금석보불)과 같은 뜻이 좌절된 채 불귀의 靈魄(영백)이 되었다 한다. 이와 같은 선고의 국가적 功勞(공로)가 당시 자료 부재로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한을 품어오던 공의 3남 신택의 述懷(술회)를 빌어 淺陋(천루)한 蕪辞(무사)로써 顚末(전말)을 적어 悚懼(송구)함을 금할 수 없으나 후손들의 崇祖精神(숭조정신) 涵養(함양)에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서기 1989년 월 예천후인 임대호 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