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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장터 이야기 오산시에 자리한 오랜 전통의 '오산장터'(구 오산장)는 18세기에 만들어져서 흥망성쇠의 우여곡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751년 실학자 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이 저술한 지리서 『택리지』에 '오산장'은 3,8일에 열린다고 표기되어져 있는데 이것이 역사기록의 시원으로 보는 것이 보편화된 이야기다. 또한 『수원부읍지/1899년』에 보면 '오산장'이 3일과 8일에 열리는 것으로 기록되어져있고, 20세기 초 제작된 『한국수산지/1911년』에는 수원 인근의 5개 시장(수원성내장, 수원성외장, 오산장, 발안장, 안중장) 가운데 물자의 집산이 다대하고 시황이 번성하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가 생기는데 장터 번영의 최정점인 1940년대에서 1980년대 까지 이어진 근현대의 역사적 사료나 자료는 관과 민 어디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보기가 묘연하다. 이렇듯 오산장터는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도심 속 오일장으로서 근대시기에는 곡식과 가축의 거래가 활발하고 왕성하게 이루어졌으며,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만세운동이 봉기했을 때 오산에서는 오산장터의 중심인 '싸전 터'(현 노인정을 중심으로 한 주변)에서 발화되어져 인근의 발안과 안중 등 경기서남부권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오산 최초의 신식 예식장과 극장이 들어섬으로써 명실 공히 오산의 문화중심이자 서민들의 삶의 교류의 장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대 변화의 날선 바람은 이곳 또한 피해락 수 없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들면서 도시화의 여파로 대형마트의 입점과 주변 전통시장인 '오색시장'의 발 빠른 행보는 문전성시를 거듭하기에 이르고, 오산장터는 고객과 점포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오색시장을 찾는 내방객을 위한 주차장화가 되어 지역의 슬럼화는 가속되기에 이른다. 순환의 여행 : 기억을 찾아 나서다 오매장터 이야기 中 발췌 및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