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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의 근원지 오산장터 1919년 3월 1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민족대표 33명의 주도로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오산시에서도 독립 만세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오산 세교동 출신 유진홍은 1919년 고종 황제의 국장에 참여하고자 서울에 있던 중 3.1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오산에 내려와 공칠보, 이성구, 김경도, 이규선, 정규환, 김용준, 안낙순 등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드는 등 거사를 준비한다. 드디어 1919년 3월 29일(음력 2월 28일) 오산 장날, 이곳 시장 장터에 모여 있던 300여명의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군중은 더욱 늘어 700~800여명이 면사무소와 오산역 등으로 이동하자 일본 경찰은 시위 군중을 향해 무도하게 발포하기에 이르렀고 선두에 섰던 공칠보 외 3명이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고 군중은 해산되었다. 오산장터 3.1운동의 주동자로 체포된 공칠보 등 8명의 독립 운동가들은 대부분 농민이었으며 성호면(오산시)에 살던 주민이었다. 이들에 대해 일제는 징역 6월에서 1년 8월까지 형을 선고했다. 이 오산장터의 시위는 경기도 지역 전체로 만세운동을 전파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에 그 빛나는 뜻을 기리는 8개의 조형물을 이곳에 세우고자 한다. □ 공칠보(1884~1939, 당시 36세, 성호면 궐리) - 1919년 징역 1년여개월, 태형 90대 - 1939년 순국 - 1995년 대통령 표창 추서 □ 이성구(당시 25세, 일형면 조원리) : 징역 1년 8월 □ 김경도(당시 34세, 성호면 오산리) : 징역 1년 6월 □ 이규선(당시 25세, 진위군 북면 봉남리) : 징역 1년 8월 □ 정규환(당시 25세, 성호면 오산리) : 징역 1년 □ 유진홍(당시 25세, 성호면 세교리) : 징역 6월 □ 안낙순(당시 25세, 성호면 세교리) : 궐석재판 징역 6월 □ 김용준(당시 28세, 성호면 금암리) : 궐석재판 징역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