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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 고장이 낳은 二十世紀(20세기) 韓國(한국)의 위대한 藝術家(예술가)의 典型(전형)인 吳之湖(오지호) 선생을 기념하는 崇慕(숭모)의 빗돌을 세운다. 올해는 선생의 탄신 一百 周年(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諸賢(제현)들이 뜻을 모아 선생의 功德(공덕)을 기리어 後生(후생)들의 敎化(교화)에 도움이 되고자 함에서다. 선생은 全羅南道(전라남도) 和順郡(화순군) 同福人(동복인)으로 忠貞(충정)깊은 名門家(명문가)의 출신이시다. 一九○五年(1905년)에 태어나서 어릴적부터 才德(재덕)이 뛰어나고 총명이 過人(과인)하여 학문과 수양을 쌓으면서 正道(정도)를 꿰뚫으셨다. 선생은 휘문고보 동경미술학교 등 학교 교육을 받은 다음에는 民族志士(민족지사)로서 文化運動家(문화운동가)로서 韓民族(한민족)의 獨創的(독창적) 藝術魂(예술혼)을 화폭에 담아가는 新美術運動(신미술운동)을 先導(선도)하셨다. 특히 綠鄕會展(녹향회전) 개최와 한국최초의 原色版(원색판) 吳之湖 金周經 二人畵集(오지호 김주경 이인화집)을 통해 이 나라 서양화단의 선구자적 所任(소임)을 다하셨다. 선생은 韓國美術史(한국미술사)의 紀念碑的(기념비적)인 작품에 매진하시는 한편, 본격적인 저술에도 注力(주력)하여 현대회화의 근본 문제, 美(미)와 회화의 과학, 오지호 작품집 등을 출간하셨다. 또한 國漢文(국한문)혼용론을 주장하시어 韓國語文敎育硏究會(한국어문교육연구회)창립위원으로 漢字(한자)폐지반대운동에도 열성을 쏟으셨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서책으로는 國語(국어)에 대한 중대한 오해, 알파베트 文明(문명)의 종언 등이 있다. 아울러 이와 같은 學藝術(학예술) 활동의 업적과 함께 교육을 통한 後進養成(후진양성)에도 盡力(진력)하셨다. 선생은 一九七六年(1976년) 大韓民國藝術院會員(대한민국예술원회원)이 되셨고, 國民勳章(국민훈장) 牡丹章(모란장), 대한민국예술원賞(상), 대한민국金冠(금관)文化勳章(문화훈장) 등을 받으셨다. 一九八二年(1928년) 十二月(12월) 二十五日(25일) 향년 七十八(78)세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一生(일생)을 통해 歷史的(역사적) 大義(대의)에 헌신하신 선생의 眞面目(진면목)은 지금도 우리 시대의 참 스승으로 자리하고 계신다. 글은 太壺(태호) 東萊(동래) 鄭鎭伯(정진백)이 짓고 鶴亭(학정) 永川(영천) 李敦興(이돈흥) 쓰고, 造形(조형)은 胄孫(주손) 象郁(상욱)이 하였다. 西紀(서기) 二○○五年(2005년) 月(월) 日(일) 吳之湖 先生 紀蹟碑 建立委員會(오지호 선생 기적비 건립위원회) 謹竪(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