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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의 본관은 연안이요 이름은 주영이며 통정대부 호조참의 백남공의 9세손 종악의 3남으로 진천에서 출생 성장하여 서기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미소 양국에 의해 38선을 경계로 국토는 분단되고 민주 공산으로 양분되어 남한지역에도 우익과 좌익으로 갈라져 처절한 싸움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곳 진천에서도 좌우익 투쟁이 벌어지니 투사는 우익단체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 입회하여 중책을 맡으시고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일생을 바치신 분이시다. 1946년 8월 공산분자들이 이월면 지역에서 폭동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는데 앞장서 공산세력을 이땅에서 잠적시키는 일에 공헌하였으며 1950년 6.25가 발발하자 남하하지 않고 내고장을 지키시다가 지역 공산당의 밀고로 북괴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청주형무소에 감금되어 심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견디시다가 연합군의 9.28 수복으로 전세가 바꾸어지자 인민군이 후퇴하기가 급하게 되어 청주형무소에 방화 수감중인 수백명의 애국 반공 의사가 사경에 이르렀을 때 투사는 불 속 감방을 몸으로 부수고 많은 애국지사를 구출 구사일생으로 살아 귀가하여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북괴군의 퇴로를 막고 인민군을 기습 무장을 해제시켜 수백 정의 무기를 노획하는 등 많은 공훈을 남기시고 수복 후 좌익단체 가담자의 전향 활동을 벌여 수많은 선량한 국민으로 인도하였으니 오직 자유와 반공 전선에 몸바쳐 온 살신성인의 보국정신은 거룩한 행적이니라. 이는 우리 국민의 귀감이며 투철한 반공정신이니 길이길이 선양되어야 할 것이다. 그날에 투사께서 공산당을 몰아냈기에 자유 대한민국이 오늘에 이르렀으며 그 공적은 후세에 찬연히 빛나리로다. 생전에 투사가 지키신 자유 민주주의를 자손만대까지 계승하여 영원무궁토록 지킬 것이며 투사의 거룩하신 발자취를 우리는 알고 있기에 그 업적을 이 비문에 새겨 반공 교육의 장으로 후세에 전하고 세세히 추모하나이다. 영혼이여 고이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