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page


79page

지사 김인수 선생께서는 광산김씨 문헌공파 12대손으로 부 김영완님과 모 한산이씨의 3남1녀중 장남으로 충청북도 괴산군 소수면 수리에서 1886년 11월 28일에 탄생하셨다. 지사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르셨고 또한 어린 시절의 마음은 어른이 되셔서도 조금도 변함이 없으셨다. 때문에 지사께서는 비록 몸은 일제식민통치기구의 하부조직인 면서기 신분이셨지만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녀노소 분비귀천의 구분없어 더개한 자주독립의 불길이 피어오를 때 분연히 궐기하시어, 동년 3월 19일 괴산장터에서 홍성희, 구창회, 권준 선생과 만세운동을 주도하셨다. 그러나 일제는 지사께서 면서기 신분임을 감안하여 석방하였으나 지사께서는 다시 3월 24일에 괴산장터에서 홍성희선생이 괴산경찰서에 체포된것에 분개하시어 겨레들 앞에서 모자를 벗어 흐드시면서 '조선만세'를 외치시어 자주 독립의 의지를 고양시키셨다. 때문에 일제에 의해 체포되시어 징역1년을 언도받으시고 옥고를 치르셨다. 뿐만아니라 1927년 6우러에 조직 된 민족주의 통합단체인 신간회에도 참여하시어 이상재선생을 회장으로 추대하시고 조병옥, 홍명희선생등과 조선민족의 정치,경제적 해방및 조선독립을 주창하셨으면 경성지부 설립당시에는 간사로 활약하시었다. 이와같이 지사께서는 내 조국 내 겨레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살아오시면서 오직 겨레의 대동단결을 염원하시다가 1961년 12월 22일 75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김인수 애국지사님의 공적을 인정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