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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愛國志士) 지천복 선생 묘(池千福 先生 墓) ← 0.7㎞ 지천복 선생은, 강원도 원주(原州) 사람이다. 그는 1919년 4월 9일 강원도 원주군 부론면(富論面) 법천리(法泉里)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법천리의 만세운동은 3월 말경 계획하다가 실패한 일이 있었다.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던 배재학당 학생 이근성(李根成)이 귀향하여 만세소식을 알리면서 구체화되었다. 그리하여 이근성과 이근원(李根元), 정우진(鄭宇鎭)등이 추진하다가 광고문이 사전 발각된 일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지천복은 만세운동을 일으킬 뜻을 세우고 동지 표광천(表光天)과 함께 만세운동에 필요한 준비를 해갔다. 이들은 거사일을 4월 9일로 정하였는데, 주목되는 것은 장날이나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이지 않고 평일에 산위에서 거사를 치루었던 점이다. 그것은 강원도의 지리적 조건 즉 산악지대의 특성과 관련깊은 것이지만, 이들은 다른 곳처럼 태극기나 깃발을 별도로 준비하지 않고 또 마을단위로 주로 밤에 봉화시위를 벌여 나갔다. 지천복 등은 비밀리에 마을사람 수십 명을 규합한 뒤 거사 당일인 4월 9일 저녁에 산수동(山水洞) 응봉산(應峯山) 마루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만세시위의 사실이 발각되면서 지천복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