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page


195page

충주향교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의 공교육기관으로 지금의 중등과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갑오개혁에 따른 근대 교육제도의 개편에 따라 점차 교육기능은 사라지고 문묘의 제형 기능만 유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전학후묘로 앞에는 교육을 위한 강당인 명륜당이 있으며, 중간에 내삼문을 두어 구분하고, 그 뒷편에 문묘인 대성전과 동무, 서무가 있어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봄,가을에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충주향교는 태조7년(1398) 계명산 아래에 처음 세워졌는데 임진왜란(1592)때 병화로 불타자 인조7년(1629)에 지금의 자리에 옮겨 복원하였다. 그 후 다시 소실된 것을 광무1년(1897)과 1936년에 중건하였고, 1980~1981년에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향교의 서쪽 옆에는 호성사가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읍리인 석천수와 그의 숙부 석감이 불타는 향교로 들어가 위패를 들고 나와 잘 보존한 공을 기리기 위해 숙종 때 세운 사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