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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마을 유래비 우리 마을은 괴산군 북하면 관동리(冠洞里)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불정면에 편입되었다가 1947년 괴산면으로 편입된 후 1979년 괴산읍으로 승격된 지역으로 읍에서 북으로 약 십리쯤 위치한 갓골의 중심지로 동으로는 노적봉과 같으며 문체가 빛난다는 빈봉(斌峯) 서로는 병풍같이 둘러쳐진 관미봉(冠尾峯) 남으로는 매가 날으는 형상의 매봉(鷹峯) 북으로는 금봉산(金峯山) 줄기가 힘차게 내리 뻗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의 묘주봉(妙珠峯)이 자리하고 있다. 지형이 갓모양과 같다 하여 갓골이라 불리며 관미봉, 망건(網巾) 장골, 갓모(冠帽)랑이, 갓진이마, 탕건(宕巾)바위 등 곳곳에 갓에 연관되는 지명과 항성치(項城峙), 토성(土城) 모퉁이, 성모(城貌)골, 사령박(司令迫)골 등 성과 관련되는 지명이 많은 것이 색다르며 명산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물좋고 공기좋아 해마다 풍년농사로 넉넉한 살림을 꾸리고 있어 인심 또한 후덕하기로 이웃에 널리 알려져 있다. 새터를 중심으로 아래새터 도락골 당골 용당 등 다섯 마을로 구성되어 신기리(新基里)로 불리고 있으며 새터는 평산신씨 육우동 청양공 후손의 발상지(發祥地)로 새로 터전을 잡고 정착하였다 하여 새터라 하고 도락(道樂)골은 전주이씨 진안대군 후손의 낙향지로 임진왜란 당시 난을 피하고 돌아났다 하여 도락골이라 하며 마을 앞에 고개가 있는데 조선시대 왕족후손이 살고 있어 고개를 지나던 행인이 발길을 멈추었다 하여 정지(停止)고개로 불리고 있다. 당(棠)골은 마을 앞에 탄건 모양의 유명한 탄건바위와 장승과 솟대가 있던 장승백이와 솟대거리가 있으며 존이감당(存以甘棠)과 관련된 아가위나무가 무성하였다 하여 당골로 불리고 있으며 용당(龍塘)은 항성치에서 내려은 산 형세가 용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바깥용담과 동으로 뻗은 안용당이 있고 그 사이에 옥현(玉峴) 즉 구슬고개가 있으며 서북쪽 오리 남짓한 지점에 고려때 큰절이 있었다 하는 절골이 있다. 금봉산 정기를 받아 인물을 많이 배출하는 고장으로 숭조(崇祖) 충효(忠孝) 화친(和親) 이념을 지표로 삼아 일심단결하여 서로 도우며 살고 있는 자랑스런 마을이기에 길이 후손에게 전하고자 주민의 뜻을 모아 이 비(碑)를 세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