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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를 자르는 등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양동에서 괴은 이춘영, 하사 안승우, 포군 김백선 등이 지평의병을 창의출병 할 때 참여하여 물자지원에 적극 나섰고, 호좌의진에서는 지병수성장으로 의병소모와 군수물자 지원에 적극 활약하다가 친일파들의 방해와 협박에 수없이 괴롭힘을 당하였다. 1907년 정미에는 이인영 의병장이 양동에서 13도창의군을 창설할 때 물심양면으로 협조하였고 다음 해인 1908년 병신 1월 24일 당거미 질 무렵 귀가 도중 노상에서 친일패당으로 추정되는 자객에 의하여 변사하니 44세였다. 양동면 석곡리의 작은가마골 자좌에 있던 묘를 2018년 4월 30일, 공의 구(救) 정신을 선양하고 체혼(體魂)의 평안을 위하여 양평군의 지원을 받아 양평을미의병국정신현창회에서 이곳 석곡리 산 74번지 양평의병묘역 자좌에 천장하였다. 배위 초계정씨 사이에 생 1남 하니 승만인데 일제의 압박과 가난으로 강원도 산골을 전전하다가 하세하여 묘는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백아곡 공동묘지에 안장했는데 실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