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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냈다. 고조는 계영, 증조 병순은 휘경원 참봉이고, 조부는 국형이다. 부친은 재옥이니, 반남박씨 종연의 따님과 결혼하여 공을 낳았다. 공은 단기 4187년(1854) 철종 5년 갑인에 출생하여 3세에 부친을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정랑 부계 안재묵 문하에서 수업하고 성재 류중교 의암 류인석 문하에 종유하였다. 위정척사와 애군여부 우국여가를 배워 을미사변 후에 의병을 모집하여 의병장으로 항전하였다. 지평 홍천 등지에서 왜적과 수차 교전을 하며 싸웠으나 정예화된 왜적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구원병을 요청하러 동지와 중국으로 들어갔는데, 이후 소식이 단절 되었다. 아들 달순이 왜경의 감시를 피하여 피눈물로 풍찬노숙하며 수년을 찾아보았지만 공허한 일이었다. 공은 여흥 민씨 철호의 따님과 혼인하여 딸 하나를 두었으니 사위는 강릉인 김진철이다. 삼종제 종린의 아들 달순을 계자로 삼았는데 달순이 정선인 전광옥과 혼인하여 5남 2녀를 낳았다. 아들은 상훈 상록 상규 상복 상시이고, 딸은 상열 상진이다.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 공의 묘소를 양평의병기념사업회가 양평의병묘역으로 천묘함에 사손 상복이 비문을 청하니 사양할 수 없어 서울대 한문수 교수가 지은 비문과 양동골비항쟁사 등을 상고하여 다시 짓는다. 이어 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