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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식(金華植)은 충남 보령(保寧) 사람이다. 유인석(柳麟錫) 의진에 가담하여 국내와 만주에서 활약하였다. 김화식은 유인석의 문인으로 1895년 일제가 경복궁에 침입하여 국모를 시해하였다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의 변보(變報)를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였다. 이어 친일정권에 의한 을미개혁(乙未改革)으로 단발령까지 강행되자 토역복수(討逆復讐)를 위해 1896년 제천(堤川)의 유인석 의진에 가담하여 주로 유인석 의병장을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후 국내에서의 항전이 불가능하게 되어 주위 사람들이 유인석 의병장에게 국외로 망명하여 항전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 때 그는 처음에는 국내에서의 항전을 포기하는 요동행(遼東行)을 적극 만류하였지만 상황이 어렵게 되자 하는 수 없이 사환·통사 5, 6명과 함께 유인석의 요동행을 수행하였다. 만주에서 그는 국내와의 연계를 통해 다시 의병을 재기할 것을 유인석에게 건의하였고, 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국내에 들어가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벗을 부르고 영웅을 모아 (중략) 이렇게 된 뒤에는 힘을 기르고 때를 기다려 우리의 숙원인 토적흥부(討賊興復)하는 사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중략) 선생님께서 이 일을 시행하신다면 제가 고국에 가서 선배들과 벗들에게 보고하고 같이 일을 도모하겠습니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국내에 돌아왔다. 국내에 돌아온 그는 유인석의 제자들과 협의하여 의병봉기를 모색하는 한편, 제천에서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 발표되었거나 오고간 문자(文字)를 수집하여 1899년 『소의신편(昭義新編)』 내외편(內外篇) 편집을 완료하였다. 그 후 1902년 이 책이 간행될 즈음에 유인석의 문인 백삼규(白三圭)·이정규(李正奎)·차재정(車載貞)이 『소의신편』2권 1책을 추가하여 함께 간행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