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page


179page

성균진사 박재홍의적비
179page

성균진사 박재홍의적비
179page

손계묵 선생은, 1919년 4월 경남 사천군(泗川郡) 사천면(泗川面) 두량리(斗良里)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중 순국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진주의거 소식을 들은 사천보통학교 재학생 황순주(黃順柱)ㆍ박기현(朴基玄)ㆍ김종철(金鍾喆)은 곧 진주로 가서 강대창(姜大昌)을 찾았다. 강대창의 주선으로 강달영(姜達永)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뒤 사천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동지를 규합하고 3월 21일 사천보통학교 졸업식이 끝나는 시간에 독립만세운동을 하기로 정하였다. 그러나 이윤조(李允祚)는 헌병에게 잡혔고 황순조ㆍ박기현ㆍ김종철은 서당 훈장 김종기의 집에 숨어 있다가 7일 만에 잡혔다. 이 사천보통학교 학생의거로 붙잡힌 학생에게 가해진 고문은 군민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학생의거 이후 1919년 4월 손계묵은 유승갑(柳承甲)과 함께 도로공사 인부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에 호응한 수백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사천읍으로 향하였지만 이 정보를 듣고 출동한 일본 헌병들의 장검에 찔리고 난타를 당하여 수십 명의 군중이 부상을 입었다. 손계묵은 체포된 뒤 부산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