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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세운동의 발상지 양양교회는 일제강점기 때 강원도지역 항일 운동에서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김영학 목사와 조화벽지사를 중심으로 1919년 4월초에 조직적인 만세시위 운동이 양양군대 전역으로 확산되었는데 이 만세운동을 위해서 태극기 제작과 독립선언서 등사를 비롯한 모든 준비는 양양교회 청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김영학목사는 항상 교인들에게 하나님 사랑, 나라사랑을 강조하였고, 조화벽지사는 교육만이 민족을 변화시킬수 있다며 교회와 나라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습니다. 2. 순교자를 배출한 교회 5대 담임목사 김영학목사는 시베리아에서 순교하였고, 8대담임목사 송정근 목사는 공산당에 의해 순교하였다. 양양교회는 순교자의 피가 흐르는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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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감리교회로부터 시작된 양양만세운동 1919년 4월 4일 ~ 19일까지 총 15,000여명이 참여(전 인구의 41%) ●대포항으로 조화벽지사가 버선목에 독립선언서를 숨겨옴 ●5일 도천면 농민 500여명이 대포리주재소 앞에서 만세운동, 5일 강현면 물치장터에서 500여명의 만세운동(물치교회 교인의 참여) ●조화벽지사가 양양교회 청년들을 중심으로 상여보관소에서 태극기를 제작, 면사무소 등사기로 독립선언서 제작(현산공원), 4월 4일 장날, 1,600여명이 만세운동 시작. 이중 수백명의 야소교인들은 김영학 목사가 지도(양양시장) ●6-7일. 농민 1,500여명이 양양경찰서를 습격, 애국자 석방을 요구하다 3명이 순국, 7일 밤에 서면 농민 100여명이 면사무소를 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