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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신부님께서는 북쪽의 사제 부족으로 평강성당 신자들을 돌보기 위해 그곳에 계시다가 1950년 6월 24일 인민군에게 잡혀 원산교도소에 입감이 됩니다. 1950년 10월 9일 후퇴길에 몰린 인민군은 교도소에 수감중인 230여명의 포로들을 밧줄로 각자 묶어 다시 4명씩 엮어 원산 와우동 반공호속에서 인민군들의 따발총에 사살되셨습니다. 그 참혹한 현장속에서 살아 돌아온 이는 당시 명사십리 담임목사인 한준명목사, 평강고교 1학년 학생 권혁기(라파엘), 성명미상 2명이었습니다. 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한공호속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물을 달라!' '목마르다!' '살려달라'는 외침에 '제가 도와드리겠어요! 제가 물을 떠다 드리겠어요!'라고 중얼거리며 숨져 간 이광재(디모테오) 사제의 넋을 기리며 그 당시 38선을 넘던 긴박한 상황을 상상하며 현재의 우리가 있기까지 감사하는 마음과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사랑을 실천한 순교의 정신을 후손들이 이어갈 수 있도록 이 길을 걸으며 마음속에 되새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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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테오 순례길(38선 도보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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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성당은 38선에서 북으로 약12킬로미터에 위치합니다. 1946년 소련군이 진주하여 양양성당을 무전실로 쓰다가 1948년엔 인민군이 진주하여 성당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이때부터 북쪽지역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양양성당을 찾아와 당시 주임사제 이광재(디모테오)신부님께 38선을 무사히 넘을 수 있게 부탁해오면 당시 38선 인근 마을 신자를 불러 그네들은 무사히 38선 남쪽까지 넘어갈 수 있도록 안내를 다시 부탁하셨습니다. 이때 남하한 경로는 여러곳이지만 주로 많이 이용한 코스는 고노골(월리), 한구렁(용천), 부소치고개(남양리), 한천산 부근, 명지리 안골이 이용되었습니다. 당시 명지리에는 경찰지서-전투경찰이 주둔했다. 당시 양양성당 주임사제인 이광재(디모테오)신부님꼐서는 남하하는 신자들이 무사히 38선을 넘도록 강복을 주고 기도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