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邦國(방국)의 민주사는 갑오동학혁명부터 記(기)함이 可(가)하리. 賊侵(적침)과 政○(정○)이 잦아 八域之生靈의 수난이 불절한데 한말의 참혹함은 천하무비였다. 공은 전봉준과 더불어 교민추중하며 페정개혁을 념원코 서기1894년 갑오년에 고부에서 거사하다. 보국안민 멸적보군하려는데 관군은 청일군과 상합하니 동학의 불승은 慟惜(통석)한 일이다. 총사접장인 공은 기천군으로 당년 12월 함남도삼성하니 의기는 제간책에 상록되었다. 공은 인천인 이공 휘 허겸의 32세손 중길의 자로 1838생으로 휘는 민석 자는 방언 호는 수암이며 천성이 호담하며 용모단엄하고 시문과 예학이 박하였다. 돈목애족하며 환난에 상휼하는 성품으로 동학혁명 접장으로 참모로 남도장군의 호칭 받았다. ○용과 무민으로 전주전 황룡전에서 진명석태전은 동학계전으로 의기는 충천하였으나 신식조련된 관군에게 자 성호와 피포되여 1895년 4월 23일에 졸 현 정읍 갑오동학제에서 향사함 배 함양박씨 정수의 녀로 을미 정월10일 졸 공의 의적은 공헌으로 사후할진데 미후기적인즉 증손 종찬이 속함에 공의 거의는 역지시사라 감히 근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