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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배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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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배(金仁培 족보명 龍培) 장군은 김해김씨 안경공파 71세손으로 1870년 6월 10일 현표씨와 경주이씨 사이에 김제시 봉남면 화봉리(봉서마을)에서 태어나셨다. 어린 나이에 당숙인 현모씨에게 입양된 후 한학을 하였고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 불렸다. 일찍이 구국의 뜻을 세우고 1894년 보국안민輔國安民) 광재창생(廣濟蒼生)의 기치(旗幟)를 내걸고 봉기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해 황토현 전투와 전주성 전투에 將領(장령)으로 활동하여 청년장군이란 명성을 얻었다. 동학농민군이 영호도회소(嶺湖都會所) 집강소(執綱所)를 열 때 영남과 호남을 아우르는 영호대접주로 임명되어 順天(순천)에 본부를 두고 새 세상을 열려는 반 봉건투쟁의 일선에서 앞장섰다. 김인배 장군은 섬진강을 넘어 영남으로 진출해 河東(하동)의 수성군을 격파하고 진주로 진격해 무혈점령했다. 일본군과 관군이 밀려들자 섬진강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이어 3차례에 걸쳐 여수의 전라좌수영 공격에 나섰다.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의 반격을 받고 광양으로 후퇴했다가 1894년 음12월 7일에 수성군에게 잡혀 광양현청에서 효수(梟首)로 처형되었다. 25세의 열혈 청년장군은 큰 뜻을 펴지 못하고 짧고 굵은 생을 사시었다. 그러나 김인재 방군의 숭고한 민족정신은 후대에 길이 전해지고 있으며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