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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 3.1독립운동 약사 우리 낙안은 백제시대부터 조선조까지인 근 21개면을 관할하던 도읍지였으며 1908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군이 폐지되고 오늘에 이른 문인향이요 충절의 고장이다. 일찌기 이 고장 출신 나철 선생은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근택 등 을사5적을 암살하려다 투옥된 독립운동가였고 그의 유지를 받아 이병채 안규휴 안주환 등 많은 유림들은 1910년 4월 일본 내각과 통감부에 격문을 보내어 한일합방의 부당성을 성토하였고 동년 5월에는 일진회의 반민족적 행위를 규탄하였었다. 경술국치의 비운을 당한 후에도 이들은 서로 통분한 심회를 달래며 광복의 기회만을 기다리던 중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이 고장 유림들도 만세운동 참여를 모의하던 차 서울에서 안호영이 독립선언서 등을 숨겨 고향으로 내려와 4월 2일 이병채 안규휴 안주환 김규석 오병원 김종주 안태섭 동지와 함께 신기마을 뒷산에 모여 오리를 잡아 피를 나누어 마시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생사를 함께 할 것을 천지신명께 맹세하고 도란사란 구국결사단체를 조직한 뒤 4월 3일 안주환은 전평규 안덕환 안용갑 등 33인의 동지를 규합 신기리 김천 근방에 모여(28사)를 조직하였고 4월 4일 김종주는 하송에서 유흥주 배형주 등 6명의 동지를 규합(결사대)를 조직한 뒤 은밀히 내통하여 거사일시와 장소 등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였다. 전평규 등(28사)대원들은 4월 8일 한흥조방에 모여 4월 9일 거사를 재다짐하고 태극기와 조선독립기를 만들었다. 4월 9일 정오 전대원들은 벌교시장 입구에 모여 회식한 다음 장꾼들 사이 사이에 잠입하여 전평규는 안용갑 안덕환 등과 함께 장꾼들을 향해(지금 조선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니 우리도 동참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자)고 외치며 만세를 선창하니 대원들과 군중들이 호응하여 장터는 만세인파로 물결쳤고 만세소리는 천지를 진동하였으나 출동한 왜경들의 무자비한 총검 앞에 전평규 안덕환 김규석 안진영강정수 곽인석 전인채 오영태 김만득 한철순 신용석 한흥량 윤점수 안담환 등이 심한 부상을 당한 채 체포되었다. 한편 김종주와 유흥주는 4월 13일 낙안성 서문 밖에서 배형주 등 4명의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와 조선독립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서문 안으로 들어가니 장